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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칸트 철학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의식 내재적이다.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우리 '의식' 밖에 있는, '세계 속에 있는 시간'이 아니다.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뉴턴 물리학에서의 '시간'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의 '시공간'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실존 철학에서 다루어지는 '시간'이나 체험과 관련이 있는 어떤 심리적인 시간과도 다른 것이다.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대상 인식과 관련이 있다.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대상 인식과 관련이 있는데,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의식 내재적인 것이다.

 

 

'의식 내재적'이라는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① 우리가 '어떤 종이의 빈 바탕'에 '점'을 연속적으로 찍어 본다고 해보자. '어떤 종이의 빈 바탕'에 점을 10개 정도 찍었다고 해보자. 이제 그 점의 개수를 세어볼 것이다. 이때 그 수를 헤아리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의식'이다. '의식'이 수를 하나씩 하나씩 헤아리는 것이다. 이때 점의 개수를 셀 때, 우리는 점의 개수를 순차적으로 세면서, 종합적으로 센다.

 

 

② 양손의 손가락을 모두 접은 상태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면서 펼친 손가락 수만큼을 세어보자. 우리는 먼저 새끼손가락을 펼치면서 '하나'를 말하고, 그 다음 약지를 펼치면서 '둘'을 말하고, 이어서 중지를 펼치면서 '셋'을 세고, 검지를 펼치면서 '넷'을 세고 엄지를 펼치면서 '다섯'을 센다. 이때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헤아리는 것은 바로 우리 '의식'이라는 것이다. 

 

 

③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공간조각들'을 순차적으로 종합하는 것이고, '공간조각들'을 동시에 표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시간조각들'을 순차적으로 종합하는 것이고, '시간조각들'을 동시에 표상하는 것이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시간을 완결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완결되어야 대상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 것은 의식 내재적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수동적인 기능을 하는 것인지 능동적인 기능을 하는 것인지를 떠나서 '시간'이라는 것은 의식 내재적인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④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형식'이고 '조건'이고 '인식틀'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간'은 한편으로는 선험적인 형식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상'과 동종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시간조각들'은 현상과 동종적인 것이고, 시간조각들을 종합하는 '시간'은 '선험적인 형식'인 것 같다.

 

'경험적 표상'에 포함되어 있는 '시간조각들'은 경험적인 것이고, '시각조각들'을 순차적으로 종합하는 것은 '선험적인 것'이고 그것은 '형식'이다.

 

비유를 하자면, '경험적 표상'은 '질료'에 가깝고 시간조각들을 순차적으로 종합하는 '시간'은 '형상'에 가깝다.  그런데 그 '형상'은 우리 '마음' 바깥에 있는 '형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형식'이다. 

 

'시간조각들'은 '경험적 표상'이고 '현상적인 것'이고 '경험적인 것'인데, '시간'은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고 '형식'이다.

 

 

⑤ 시간을 1초, 1초, 1초, 1초, 1초 이렇게 헤아리는 것은 확실히 의식 내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이 1초, 1초, 1초, 1초, 1초를 헤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칸트 철학에서의 '시간'은 감성의 형식이고 선험적인 형식인데, 이것은 '관념 틀', '의식의 틀'에 가깝다. 이것은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