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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철학

영화 다크나이트와 철학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등장하는 '조커'는 혼돈의 대행자이다. 조커는 '무계획', '혼돈', '우연'을 추구한다.

 

우리가 '조커'를 보고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사회가 주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나이트에서 등장하는, '조커'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을 언급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조커는 소유욕이 없다. 보통 익명의, 범죄자들 대부분은 물질적 소유욕이 많지만 조커는 물질적 소유욕이 없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조커는 '자유로운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획일화된 사회, 통일화된 사회 속에서 조커의 모습은 '어떠한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사회 속에서는 '각 개인들의 개성', '개인의 다양한 본성들'이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런데 '조커'는 규격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준다.

 

 

사회가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관념으로 개인을 구속하는데, '조커'는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됨을 추구한다. 

 


개인이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면서 사회관습에 질식하는 경우도 있고, 사회 자체, 관습 자체가 부패한 경우도 있다.

 

 

조커의 철학은 부패한 관습을 타파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조커의 철학은 부패한 관습, 부패한 사회 질서를 타파하는 것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고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조커의 행위'는 부패한 관습, 부패한 관념, 부패한 제도를 해체시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 잘못도 없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만약에 조커의 철학이 사회 속에 만연하게 되고, 모든 사람이 조커처럼 행동하게 된다면, 아마도 사회는 개판이 되고 말 것이다.

 

 

 

다른 한편, 배트맨은 정의를 지지하지만 남들에게 정의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남들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커'보다 '배트맨'이 사람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배트맨은 '자기 희생'의 정신을 보여준 데다가 타인한테 그것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타인한테 '정의'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조커'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데다가 다른 사람에게 '혼돈'의 철학을 강요하였다(타인에게 자신의 철학을 강요함과 동시에 세상을 자신의 철학으로 물들임). 

 

'다양한 사상들', '다양한 관념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사회가 열려있어야 하는데, '혼돈'의 철학을 세상에 물들이려는, 조커의 시도는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철학(혼돈의 철학)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회가 획일화되고 통일화된 것을 비판하는 조커의 철학이 자신의 철학도 그러한 사회질서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트맨의 행위는 단지 조커를 막는 것에만 그 목적이 있다. '어떠한 사상'으로 세상을 물들이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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